짧은여정 긴호흡/답사가는날

남한강따라-충주 청룡사터와 탑평리7층석탑(중앙탑), 월악산의 사자빈신사터와 미륵리절터

부석사 2012. 11. 26. 00:08

2011년 5월 29일 오후의 4절터(덧붙임은 시간나는대로...ㅠ_ㅠ)

 

1. 충주 청룡사터

자그마한 골짜기에 이렇게 이쁜 절터가 있나 싶다. 청룡사터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는데 입구에 도착하니 버젓한(?) 문화해설사 가건물이 있고 해설사도 2명이나 상주하고 있다. 보통은 주말에는 당번 설 사람이 없어 비워두기 쉬운데 충주의 해설사들은 열의가 넘쳐보였다. 해설사 1분을 따라 작은 개울을 낀 예쁜 오솔길을 살짝 걸었다.

 처음 만난 소박한 비는 이 청룡사터를 세울 때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과 사연을 담은 비란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진 이 주변 모두가 절터라고 하니 꽤나 큰 절이었던 듯.

 조금 더 올라가니 삿갓형부도(?)와 종형부도가 아래채를 차지하고  좀 더 위쪽에 보각국사정혜원융탑을 가운데 두고 석등과 비가 앞뒤로 서 있다.

이 비석이 시주자비. 보각국사 혼수스님의 부도비보다 화려하다...ㅎㅎ

8부중상이 조각된 부도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비는 장명등인 사자석등과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가 나란히 서 있다. 화려한 석등과 부도에 비해 비석은 소박단순하다. 이수와 귀부 모두 생략하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다듬었다.

 

 

사자석등이래서 사자인줄 알았다. 영락없는 두꺼비몽타주....

 

그 아래쪽에 있었던 삿갓쓴부도와 종형부도.

 

2. 충주 탑평리7층석탑(중앙탑)

 

 

 

 

 

3. 월악산의 사자빈신사터(師子頻迅寺)

사자빈신.  화엄경 입법계품 ‘세존이 모든 보살들을 여래의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게 하려고 미간백호로부터 큰 광명을 놓는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고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중생구제에 힘쓰겠다는 뜻이다.

 

 

 

 

 

 

 

 

 

 

 

아래는 <한국금석문영상종합정부시스템>에 실려있는 판독문

 불제자(佛弟子) 고려국(高麗國) 중주(中州) 월악산(月岳山)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동량(棟梁)은 삼가 받듭니다.
대대로 성왕(聖王)께서 항상 만세(萬歲)를 누리시고,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해지고, 법륜(法輪)이 항시 전(傳)해져서, 이 지역 저 지방에서 영원히 원적(怨敵)이 소멸된 이후 우연히 사바(娑婆) 세계에 태어나서,
이미 화장미생(花藏迷生)을 알았으니, 곧 정각(正覺)을 깨우칩니다.
삼가 공손히 9층 석탑 1좌(坐)를 조성(造成)하여 영원토록 공양(供養)하고자 합니다.
태평(太平) 2년(1022, 현종 13) 4월 일에 삼가 기록합니다.

 

*성왕 : 전륜성왕, 불법을 수호하고 통치하는 전설속의 임금(고려 국왕을 지칭하는 뜻으로 풀이) 

* 원적 : 고려와 3차에 걸쳐 전쟁을 벌인 거란의 요(遼)나라를 지칭

* 화장미생 : 화장(연호장섹)가 생을 미혹하다

* 태평 : 요(遼)나라 성종(聖宗)의 3번째 연호이며, 모두 10년간 사용되었다.(1021~1030)

 

4.월악산 미륵리절터(미륵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