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여정 긴호흡/답사가는날

남한강따라-흥법사터와 고달사터, 경지에 이르렀는가

부석사 2011. 11. 7. 00:27

2011년 5월 28일

신륵사를 보고 흥법사터로 향한다. 이 지역은 처음이라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기냥...차타고 가는 대로 간다.

답사책이나 박물관 앞뜰에는 흥법사터니 법천사터니 고달사터, 거돈사터 에서 가져온 여러 고승들의 부도들이 즐비하나 가보지 않은 유적지 유물들의 기억이란 마트영수증 글씨가 세월에 바래듯이 금방 지워져 버린다.

 이제 그 그립던 절터를 다 둘러볼 참이니 남한강가의 기억은 남한강물만큼이나 지워지기 어려울 것이다.

 

 흥법사터(원주시)

신륵사에서 목아박물관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 큰 길에선 기대했던 이정표도 제대로 없어 물어물어 찾아갔다. 비포장길을 5분여 가니 인삼밭앞의 석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통일신라 말기의 절로 추정된단다.

고려 태조가 진공대사 충담(869~940)을 왕사로 임명하여 흥법사를 중건해주고 흥법선원이 되었다. 이름처럼 이때 수백명의 스님들이 찾아와 선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폐사되어 이렇게 터만 남았다. 3층석탑, 비석 없는 부도비받침과 이수, 석등받침, 석재들만 밭으로 변한 절터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삼층석탑이 있는 영역외에 위쪽 민가가 자리잡은 석축은 절 건물터였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강제이탈당한 진공대사부도는 현재 중앙박물관 뜰에 다른 고승들의 부도와 함께 있다. 특이하게 석관도 함께 있는데 불경과 관련유물이 들어있었을 것이란다.

 중박에 흥법사에서 반출되었다고 전하는 또 하나의 부도가 있는데 염거화상(?~844)의 부도이다. 그래서 출처도 흥법사터염거화상...이다.(산청의 구형왕릉처럼).

 염거는 가지산문의 2대조사이며 도의선사로부터 설악산 진전사에서 법맥을 잇고 또 체징에게 전하였다. 체징이 보림사에서 가지산문을 열었으니 도의를 1대, 염거를 2대조사로 삼았단다. 그 염거화상의 부도가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한 80년쯤 전까지...

 

 진공대사 부도비의 용머리모양.  동그랗고 안경을 쓴 듯한 커다란눈, 뒤집어진 윗입술, 길게 낼름거리는 혀는 귀엽기 그지없다. 몸에는 용비늘이 두렷한 것이 얼굴에서오는 코믹함을 지우려  애쓰고 있지만 이것마저 강아지털마냥 보드랍다.

 밭가에 석재들이 밭경계를 이룬다.

 

 

 

 

 이수에< 진공대사>라는 글씨가 보인다. 비신은 크게 파손된 채 중앙박물관에서 보관중이란다.

비신옆에  있는 석등받침으로 보이는 연꽃석물.

 

 

 

 

 

 

 

 

고달사터(여주시).

 흥법사터에서 30여분 거리지만 고달사터는 여주시 소속이다.

너른 들판이 삼면의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멀리 네모난 대좌가 뚜렷하게 보이고 여기저기 전각터가 열은 넘어 보인다.

한 눈에도 어마어마한 대찰어었음이 짐작된다. 여기에 보고싶은 부도가 있다. 하지만 부도는 아직 없다. 저 어디 산속에 숨겨져 있단다.

이름마저 특이한 고달사(高達寺), 높은 경지에 도달한다는 뜻인데, 한글 그대로 읽으니 고달프다다 ㅋㅋ.

전성기땐 사방 30리가 절땅이었다는데  폐사된 지 오래돼 높은 경지를 이야기해 줄 흔적이 많지 않다.

다만 흠모하여 그 흔적을 찾는 이 적지 않으니 쓰러진 절의 삶이 고달프지는않을 것이다. 고달사터에서 반출된 쌍사자석등(이 석등의 사자상은 법주사나 영암사석등과는 달리 앉아있다.)이 중앙박물관 뜰에 있다. 전시관이 아닌 정원으로 꾸며진 뜰인데 주변에 남계원탑 등이 같이 있다.

 

저 너른 터가 다 둘러보려면  꽤 발품을 팔아야 함을 말해준다.

중박의 쌍사자석등이 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주인잃은 석불대좌. 이만한 대좌우에 앉으시려면 부처 또한 이에 어울리는 덩지였으리라.

 같이 간 샘이 크기측정에 직접 몸으로 크기를 재 주셨다.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라고 쓰여져 있다. 뭐...읽은 것도 있고 컨닝한 것도 있고... 원종대사 찬유의 부도는 오른쪽 언덕에 있다.

 고달사엔 도깨비가 있다, 웃기는...

 역시 웃기는 용도 있고

 

헤르메스처럼 발에도 날개를 달았다.

 

원종대사 부도비에서 더 올라가 있는 작은 비신. 이수고 미신이고 머리고모두 날아가버리고 몸만 남았다. 동글동글한 몸체가 아기처럼 귀엽다. 

 

 국보4호 고달사터 부도. 크기에 압도당하고 화려함에 눈둘곳이 여간 아니다.

주인을 몰라 그냥 고달사터 부도라고 한다. 원감대사 현욱의 것이란 설만 있을 뿐이다.

그 근거로 아래에 있는 원종대사 찬유의 부도가 이 부도를 본뜬 것인데 원감대사는 원종대사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높은 공력의 부도가 도둑맞지 않고 박물관으로 실려가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며 멀리서 찾아온 이의 수고로움마저 만행으로 여겨지게  하는 이 자리가 고마울 뿐이다.

 

고달사부도 아래쪽에 있는 원종대사 찬유의 부도.

원종대사부도는 억울하다. 다른 곳에 있었으면 높은 이름을 얻었으련만  최고의 부도곁에 있는 탓으로 그저 그런 부도가 되고말았다.

걸작을 본 후니 아무리 봐도 2%가 부족하다. 마치 연곡사의 동부도와 북부도를 보는 느낌?!

크기도 미치지 못하고 조각도 미치지 못한다. 용과 이무기 느낌이랄까...

그래도 나름 깜찍한 디테일이 남아있다. 이무긴지 용인지 긴 목을 뺀 모습은 깜찍하고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은 듬직하다.

 

위쪽 부도가 팔각의 기단인 반면 이 부도는 사각의 기단석을 썼다. 팔각기단이 사각기단보다 앞선시대의 형태란다.

 

 

음...오늘 용을 너무 많이 봤다. 이 분위기 죽~이어져 용꿈이라도 꾸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