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3. 답날.
이른 봄, 답날에서 남도땅으로 봄구경, 마을구경을 떠났다.
지지난 가을 강진구경을 나섰던 그 길. 장흥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고개넘고 마을길 지나 천관산앞까지 가서 멈췄더랬다.
먼저 장흥 천관산을 사시사철 앞에 두고 노는 방촌마을.
조선후기 근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방촌마을엔 집의 구조와 살림살이에서부터 실학적 해석을 묻혔다. 조선중기이전의 고택들과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스타일?이다.
하늘의 면류관을 썬 산, 천관산.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천관녀와 김유신야그보다 신선한 듯...
지천으로 핀 광대나물. 동행하신 분이 자꾸 헷갈려서 <무당나물>이라고 해서 많이 웃었다.
방촌마을의 유래랍니다.
감옥터였다는 우물. 방촌마을엔 유난히 우물과 연못이 많다. 물이 샘솟아야 번성한다는 풍수가 있는지....
다같이 돌아보자, 동네 한바퀴...
처음으로 간 위씨네 종가집.방촌마을은 위씨 집성촌이다.
원래 동헌이었다는데 지금은 위씨네 종가집이 자리한다. 문이 잠겨있어 안은 볼 수 없었지만 자연석을 살려 두 집의 들머리를 곱게 가른 분위기 짱인 골목길에서 많이 놀 수 있었다.
이 동네선 어디집이나 천관산이 앞마당이다.
바위틈에서 광대나물 한 뿌리가 용캐도 해바라기하느라 여념없다.
두번째. 존재 위백규 선생의 옛집.
대문앞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근대적으로 해석한 연못이 봄맞이에 한창입니다. 원래는 섬이 네모나면 연못둘레는 둥글게 마무리하는데 이 연못은 네모난 섬에 연못둘레는 둥근각진 모양이다.
복원이 쎈차이 된 줄 알았는데 이것이 바로 성리학적 사고를 살짝 비튼 근대적, 실학적 해석이라고 하시었다, 길잡이샘이...
들어저자 마자 안채가 뚜둥... 안채를 대문에서 둘러가게 숨기지도 않고 사랑채와는 내외담으로 구분하지도 않은 근대(?)적 배치.
안채의 정화조(저 담장안이 정화조란다)와 장독대.
존재의 옆모습.장식없이 자연석과 십자칸지르는 것으로 멋을 대신했다. 아궁이의 높낮이를 조절해 단순함을 탈피한 듯...
대나무를 이용한 실용주의 난간?ㅋㅋ
그 분이 오셨습니다~~ 영접하소서.....
사당올라가는 동백숲과 계곡.
사당의 풍판이 참 이뽀죠이...
세번째 집. 위성렬(?) 가옥. 이집은 대문안으로 난 고샅길과 안채의 뒷배경이 일품이다.
사랑채를 왼쪽에 끼고 안채로 올라가는 돌계단길. 풀꽃과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봄날을 만끽하고 있다.
안채의 감나문지 배나문지 온 몸을 틀어 자란 자태가 존경스럽다.
사랑채 굴뚝은 봉황인 듯하지만, 한 마리 타조(?)에 더 가까운 동물이 마지막 남은 시멘트의 찰기를 애처롭게 꽉 잡고 있다. 곧 저 마지막 남은 타조봉황도 수명이 다 할 듯...
역시나 멋진 연못이 기다리는 사랑채. 8월 배롱나무 붉은 꽃이 만발할 때를 상상한다. 명옥헌보다 더 멋질 듯...
처마를 덧대어 낸 풍이 거추장스럽진 않고...
보너스. 방촌마을에서 나오는 길에 관산부부장승.
이분은 할배. 그저 좋은 미소로 유명한 장승이라고 한다.
길 하나 두고 마주 선 할매장승. 할배에 비해 미소가 빠진 듯 하나 자세히 보면 할매도 웃고 계시다. 단지 자리를 잘못잡아 미소가 햇빛에 가려질 뿐...
장흥에서 장흥삼합(소고기, 표고, 키조개)으로 점심을 먹고 토요시장을 잠시 구경하는 여유..
장흥삼합은 1층 식육점에서 소고기를 따로 사서 윗층으로 올라와 키조개와 표고세트를 1만원에 구입해 먹는 방식이다(밑반찬과 쌈은 따로 나온다). 근데 1박2일 이후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와 식당이 발디딜틈도 없고, 비싼 삼합을 먹는데도 쫓기듯 먹어서인지 대접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보는 내내 궁금했던 장흥의 산. <억불산>이랜다. 저 뾰족한 바위는 며느리바위. 시주승을 박대한 시아버지와 용서를 빈 며느리와 홍수설화가 있는...어디서나 있는 이야기가 저 억불산 며느리바위에도 있다.
이번엔 보성의 강골마을 집들을 찾아나섰다.
보성 강골마을의 집들은 방촌마을보다 더 근대화된 형태를 보인다. 양반집들도 농사일이 중요해졌고 곡식을 거둬들일 넓은 마당과 곡식을 보관할 큰 곳간이 초가안채 옆에 기와지붕으로 자리잡고, 사당도 안채 바로 옆에 있어 실용적 생활상을 보였다.
첫째집은 초가를 얹고 장독대에도 솟을문이 있는 이식래라는 분의 집. 아줌씨들에게 끌려 조청사러 줄줄이 엮여간 그 집.
깨진 사발을 연자방아돌(?)위에 설치예술로 승화시켰다.
살림살이가 중요해졌는지 장독대로 솟을대문이...
기와장독대와 초가 안채가 이채롭다. 언냐들이 줄줄이 저 분을 따라 강골마을 특산품 조청이며 엿사러들 가십니다~~~
그러는 새 재너머샘은 흙돌담길을 따라 다음 답사집으로...gogo 왠지 쓸쓸해 보이는 저 뒷모습은 뭐지....?
이집엔 이식래가옥과 반대로 남자분 서너분이 생맥주잔을 기울이던 그 부잣집.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란다.
멀리 보이는 오봉산 아래 솟을대문과 너른 마당. 양반댁도 농사를 짓고 거둬들이고 곳간채우는 일이 큰 일이 된 근대사회상을 반영한 구조라는...
안채의 부엌 바로 옆(담도 없이) 사당채의 우물과 맷돌과 절구통과...
그 댁의 곳간채,
마을의 공동우물. 집집마다 우물이 잇는데 또 공동우물이 있다. 방촌마을이나 이 강골마을이나 우물 무~~지 많더라.
서울살다 텃밭관리하느라 주말에 내려왔다는 그 어르신의 댁 뒤뜰. <이금래 가옥>인지 싶다.
안채의 뒤안을 凹모양으로 내서 여가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어떤 분은 이 뒤안의 구조만 가지고 논문을 썼다는 유명한 뒤안모양이란다.
(사진찍느라 제대로 못 들은 띠가 팍팍나네 ㅠ_ㅠ)
이 뒷마당을 보는 순간 양동마을 향단의 며느리채의 마당이 생각났다. 아마 그 마당은 이것보다도 작았을 것이다. 여긴 고작 뒤안인데....
그 생맥주어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읊조렸던 그 <열화당>. 사실 자기네 윗어른들이 지어놨으니 자랑하고픈, 지극히 주관적인 자랑이겠거니 해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의외의 보물을 찾았다. 대박!!
아름드리 동백이 반은 땅에 반은 나무에 얹혀져 춘백의 열정을 한껏 괴어내고 있었다.
일제시대 여인네들이 몸빼바지를 입고 매꿨다는 득량간척지.
이제 벌교까지 왔다. 태백산맥문학관.
다녀온 지금 다시 태백산맥을 열독중이다. 근데 내용이 다 새롭다. 두번째 읽는 건데도...ㅠ_ㅠ
등장인물들의 인맥들이 메모된 자료.
육필원고의 높이. 초록웃음님이 본의아니게 잣대가 되어 주셨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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