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0일.
합천박물관을 비롯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옛날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먼저. 남명이 제자를 가르치던 뇌룡정. 삼가면에 있다.
뇌룡정이란 장자에 나오는 ‘연묵이뢰성 시거이용현, 깊은연못과 같이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뢰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나타난다 .’에서 따 온 것이란다. 산천재의 글귀와 통하는 처사다운 선택이다.
개울로 내려가는 샛문. 돌보지 않은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뇌룡정의 유래
합천 박물관. 읍내에서 한창 벗어난 쌍책면 옥전고분군에 자리잡았다.
옥전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주차장근처 뜰에 석탑의 부재인 듯한 석물 몇 개가 도란도란 지루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다.
율곡면 이순신 백의종군시절 머물렀던 모여곡 이어해가
동네 주민(이어해의 후손?)이 우리를 안내하고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가운데 기와집뒤 오른쪽 슬레이트집이 이어해가
해인사 가는 길에 있는 월광사터.
대가야가 신라에 항복하자 왕자 월광태자는 투항하지 않고 이 곳에서 전사했다는데 이 곳에 월광사를 지어 넋을 기렸다는 전설이...
동서 쌍탑이 같으면서 다른 모양으로 월광사를 지키고 있다. 3가지가 다르단다. 기단의 탱주가 1개:2개, 1층몸돌굄석(?), 또 하나가....??(1층기단의 기울기였나?)
가야산 해인사 반대편 성주군 법수사터.
늘 해인사로만 갔지 그 뒤편 가야산엔 처음으로 갔는데 가야산이 더 가까이 있었고 성주쪽의 모습이 새로웠다. 가는 길에 정견대라는 곳이 있었는데 가야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란다.
정견대는 가야산신 정견모주를 일컫는데 이 산신이 하늘신 이비가(지)와 혼인하여 아들을 둘 낳았는데 큰 아들이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둘째아들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한다.
해인사와 버금갈 정도로 대찰이었던 법수사는 맥이 끊이지 않고 거찰이 된 해인사와 달리 후백제 견훤의 몰락과 함께 힘을 잃었다가 임진왜란쯤에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절터의 거대한 석축과 탑. 연화대좌가 그 때의 규모를 말해 줄 뿐 등산객들은 곁눈만 주고 지나다닌다.
연화대좌
해인사까지 왔습니당
해인사 묘길상탑. 진성여왕때쯤 민란을 수습하다 숨진 이들의 위령탑이라고 한다. 현재의 충혼탑 비슷한...
성보박물관 사진을 흉내
해인사 팔만대장경각. 지금은 큰소리도 못 내게 하고 사진도 절때~~~~ 못 찍게 하더라. 문화재보호...필요하지만 너무 의지가 남용스럽더라.
홍제암 뒤 유명한 분의 부도가 있다길래 찾아갔다.
마지막 행선지 모산재 아래 영암사터.
지금은 저 집들이 모두 헐리고 연화대좌도 뒤쪽으로 옮겨져 있다. 복원작업을 시작하려나 보더라.
법주사 사자자석등보다 자리나 맵시나 표정이나 빠지는 게 없다.
금당터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조금 허리를 굽혀 보면 숨은 보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사당의 깨진 석등.
조사당을 사이에 두고 비신없는 이수만 두 기 멋자랑을 하고 있다.
저녁안개가 내리기 시작한 절터를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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